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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이 말하는 건강의 기준, 현대의학으로 다시 읽다

📑 목차

    동의보감이 말하는 건강의 기준, 현대의학으로 다시 읽다

    1. 건강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나이, 그리고 동의보감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20대에는 밤새워도 멀쩡했는데, 30대 후반쯤 되면 “어제 뭐 잘못 먹었나?”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예전에는 감기쯤이야 하루 이틀이면 지나갔는데, 요즘은 약 먹고도 회복이 더딘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건강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라, 매일 아침 몸 상태로 체감되는 현실이 됩니다.

    이런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건강하다는 건 뭘까?”
    병이 없으면 건강한 걸까요, 아니면 병원에 안 가도 되는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이 질문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조선 시대에도 나름의 답을 정리해둔 책이 바로 동의보감입니다.

     

    동의보감은 단순히 옛날 약 처방을 모아둔 책이 아니라,

    당시 기준에서 ‘건강이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생활 의학서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동의보감이 말하는 건강의 기준을 살펴보고,

    이를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보며

    지금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동의보감은 왜 ‘병’보다 ‘사람’을 먼저 봤을까

    동의보감은 1613년, 허준에 의해 편찬된 의학서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는 전쟁으로 피폐해졌고, 의료 인프라도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병원도, 약도 부족한 상황에서 허준이 고민한 것은 단순한 치료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병에 덜 걸릴 수 있을까”가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병의 이름보다 사람의 상태를 먼저 설명합니다.
    몸의 균형, 생활 습관, 감정 상태, 계절 변화에 따른 몸의 반응 등 지금으로 치면 꽤 종합적인 건강 관리 지침서에 가깝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건강의 핵심은 아주 명확합니다.

    • 기혈이 잘 돌고
    • 장부 기능이 균형을 이루며
    • 일상생활에서 무리가 없는 상태

    즉, “병이 없다는 결과”가 아니라 “몸이 무너지지 않는 과정”을 건강으로 봤다는 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아직 병원 갈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이러면 큰일 날 것 같은 상태”를 이미 위험 신호로 본 셈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선구적인 시각입니다.

    허준은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을 최선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병이 생기기 전,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쯤 되면 “그때 스마트워치라도 있었으면 허준 선생님이 제일 먼저 쓰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동의보감이 말한 ‘균형’과 현대의학의 항상성

    동의보감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균형입니다.
    기와 혈, 음과 양, 장부 간의 조화가 무너지면 병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이 개념은 얼핏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현대의학으로 번역하면 꽤 익숙한 개념이 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부릅니다.
    체온, 혈당, 혈압, 수분량 등 우리 몸은 일정한 범위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균형이 깨지면 피로, 염증,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이름만 다를 뿐, 방향성은 매우 유사합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건강한 사람은

    • 쉽게 지치지 않고
    • 회복이 빠르며
    • 계절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기준은 지금 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질병이 없더라도 만성 피로, 수면 장애,

    반복되는 소화 불량이 있다면 건강한 상태로 보긴 어렵다”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동의보감이 이미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과식, 과로, 과도한 감정 소모, 불규칙한 생활은

    모두 건강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쯤 되면 “허준 선생님, 회식을 줄이라고도 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시대엔 회식이 아니라 잔치였겠지만 말입니다.


    4. 동의보감의 건강 기준,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하면

    그렇다면 동의보감이 말한 건강 기준을 현대적으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회복력입니다.
    동의보감에서 건강한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병에 걸려도 잘 회복되는 사람입니다.

    이는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면역력, 회복 탄력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둘째, 일상 유지 능력입니다.
    일을 하고, 먹고, 자고, 움직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중요하게 봤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버티는 삶”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이 건강의 기준이 됩니다.

     

    셋째, 과하지 않은 생활입니다.
    동의보감은 지나침을 가장 큰 적으로 봤습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감정을 쓰는 상태는 모두 병의 씨앗이 된다고 봤습니다.

    이건 현대의학에서도 동일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과로는 거의 모든 만성질환의 공통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넷째, 개인차 존중입니다.
    동의보감은 체질과 상태에 따라 같은 증상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현대의학 역시 개인별 유전, 환경, 생활습관을 고려한 맞춤 의료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동의보감은 결코 비과학적인 책이 아닙니다.

    다만 당시의 언어로 설명했을 뿐, 본질은 지금도 충분히 통용됩니다.


    5. 건강은 ‘잘 버티는 몸’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몸’

    현대 사회에서 많은 분들이 건강을 “아직 병원 안 가도 되는 상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관점에서 보면, 이 기준은 꽤 위험합니다.

    이미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그때는 건강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동의보감이 말하는 건강은

    • 매일 버텨내는 몸이 아니라
    • 일상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몸입니다.

    피로를 커피로 덮고, 수면 부족을 주말 몰아서 해결하고,

    소화 불량을 그냥 참고 넘기는 생활은 언젠가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이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의학 역시 최근 들어 예방과 관리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정기 검진, 생활습관 개선, 스트레스 관리가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동의보감과 현대의학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국 건강의 기준은 하나로 모입니다.
    “지금 이 생활을 몇 년 더 반복해도 괜찮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동의보감 기준에서도 꽤 건강한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6. 동의보감이 지금 시대에도 읽히는 이유

    동의보감이 400년이 넘도록 읽히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가치 때문이 아닙니다.
    이 책은 병보다 사람을 보고, 치료보다 삶을 먼저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선은 오히려 현대에 더 필요한 관점이 되었습니다.

     

    건강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동의보감은 “정답”을 주기보다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기준은 지금도 충분히 유효합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고,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이런 기본 원칙만 지켜도 건강은 생각보다 오래 유지됩니다.

     

    허준 선생이 지금 우리를 본다면,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병 나서 찾지 말고, 지금부터 좀 쉬어가게.”